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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NeXTSTEP

History of NeXT Inc.

by soosun 2008. 8. 18.

 

History of NeXT Inc.

Posted by: Tom on Jul 26, 2005 - 08:04 PM
Workstations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수수께끼의 지도자였다. 애플에 있던 시절 그는 하나 하나 사소한 일까지 모두 다 신경을 쓰는 제일 까다로운 관리자가 된다거나, 아예 관심을 끊고 프로젝트를 흘러가는대로 놓아둘 수도 있었다. 그의 스타일은 전례가 없었으며, 성공한 것으로 비추어졌으며, 그가 관여한 두 개의 프로젝트인 애플 II와 매킨토시는 둘 다 애플에서 제일 성공을 거둔 제품이었다.

그의 예측할 수 없는 스타일을 누구도 쉽게 다루지 못했다. 잡스는 몇 년 전 스스로 고용한 존 스컬리(John Sculley)에 대해서도 가차 없었다. 몇 번의 권력 다툼이 있은 후 잡스는 애플 캠퍼스 뒤편의 한 사무실로 기약 없이 좌천됐고, 1985년 잡스는 애플을 떠난다.

1981년 주식 상장 이후 부자가 된 애플 직원이 많았고, 잡스도 그 중 하나였다. 자기가 만들어낸 회사에서 축출되었다는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티브는 기업 사냥에 나선다. 그가 맨 첫 번째로 인수한 회사가 바로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자회사(후에 픽사로 이름이 바뀐다)였다. 하지만 마이크로컴퓨터에 대한 열망을 멈출 수는 없었다. 따라서 그는 차세대 개인용 컴퓨터를 만들고, 개척하기 위해 회사를 하나 세우기로 결정내린다.??

애플에 있을 때, 잡스는 매킨토시의 탄생을 관장했지만 결과물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었다. 개발진들이 매킨토시를 상당히 제한시켜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매킨토시 제품이 나머지 기술과 함께 느리게 발전하리라 예상하였다. 게다가 퀵드로우는 운영체제에 묶여 있었고, 메모리 관리 시스템 또한 하나 이상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효율적으로 돌리기 거의 불가능한 샅애였고, 하드웨어 자체도 가격과 퍼포먼스간의 타협의 소산이었다.

스티브는 자기 돈 7백만 달러를 들여서 넥스트를 창립한다. 처음에 넥스트는 완전히 새로운 컴퓨터를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다. 다른 회사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에 돌아갈 운영 환경을 만드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잡스의 개인적인 희망은 화면과 프린터가 진정한 일치를 보이는 위지윅 환경과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완벽한 멀티태스킹과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환경을 제공하는 그래픽 시스템이었다.

70년대 후반, 제록스 PARC의 엔지니어들은 프로토타입 웍스테이션 디스플레이와 프린터 운용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은 행동할 줄 모르는 제록스에 답답해하며 애플로 떠나갔었다. (비록 나중에 제록스는 이 기술을 이용하여 Ventura Publisher를 내놓게 되지만 말이다.) 1984년, 잡스가 여전히 애플에 있을 때, 어도비가 애플의 유명한 레이저라이터 시리즈 프린터에게 포스트스크립트 렌더링 엔진을 라이센스한다. 스티브 잡스와 넥스트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포스트스크립트가 디스플레이용 이미지 그리기도 구현시키면서 출력된 용지를 그대로 복사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또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객제 지향 프로그래밍이 앞으로 주역이 되리라 예상하였다. 최종 사용자들에게는 애플리케이션이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는 좀 더 작은 프로그램들의 집합으로 만들어진다는 의미였다.

컴퓨터가 점점 더 강력해질 수록, 한 번에 하나 이상의 프로그램을 돌리는 편이 더 실용적으로 되어갔다. 이미 테스크 스위칭을 지원하는 DOS도 여러 버전(제일 유명했던 DOS가 CP/M과 나중에 나온 DOS인데 둘 다 Digital Research에서 나왔다)이 나와있었다. 문제는 각각의 프로그램을 각각의 가상머신으로 돌린다는 데에 있었다. 즉 정보와 코드를 쉽게 공요할 수 없던 상태였다.

그동안 애플에서 한 엔지니어가 넥스트로 스카우트된다. 그는 애플에서 MacAuthor를 작성했었다. 애플이 아직 내놓지 않은 제품의 모든 저작권은 애플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이 엔지니어는 당 권리를 넥스트용 워드프로세서 회사에 팔았고. 이 제품이 나중에 WriteNow로 등장한다.

잡스는 웍스테이션급 컴퓨터와 소비자용 운영체제를 그리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의도를 발표하자마자, 애플은 수많은 애플 엔지니어를 넥스트로 데려가서 매킨토시와 직접적으로 경쟁할 머신을 만들 것이라면서 지적 재산권 침해 혐의로 넥스트를 고소하기에 이른다. 갑자기 넥스트는 썬과 Apollo와 경쟁해야 할 웍스테이션 시장으로 떠밀린 꼴이었다.

1986년, 넥스트는 어도비로부터 포스트스크립트를 라이센스하고,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NeWS 윈도윙 시스템에서 역시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를 사용하기 원했던 썬이 도움을 준다)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스티브 잡스는마흐 마이크로커널 상에서 돌아갈 넥스트스텝을 만들기 위해 카네기 멜론에서 개인적으로 애이비 티배이니언(Avie Tevanian)을 영입한다.

마이크로커널 또한 컴퓨팅에 있어서 새로운 개념이었다. 모든 드라이버와 네트워킹 루틴을 커널(모노리딕 커널 운영체제)로 통합시키는 대신, 마이크로커널 운영체제는 커뮤니케이션과 태스크만 관리하는 커널을 사용하였다. 다른 시스템 서비스는 모두, 서버라 불리는데, 커널과는 독립적으로 돌아간다. 즉 시스템을 좀 더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서버가 오류를 일으키면 서버만 재시동시키면 된다.)

이 운영체제는 넥스트스텝이라 불려졌으며, 잡종 마이크로커널 디자인을 사용하였다. 서버로서 모두 BSD 상에서 돌리는 것 대신, 네트워킹같은 것들이 커널에 통합되었다.

넥스트스텝에서 제일 중요한 면모는 기능이라거나 그 아키텍쳐가 아니었다. 바로 프로그래밍 환경이었다. 객제 지향 환경은 프로그래머들이 프로그램을 한 데 통합시키기를 매우 쉽게 만들어 주었다. 넥스트스텝에서 주로 쓰인 프로그래밍 언어는 오브젝티브 C이며, StepStone 직원인 브래드 콕스(Brad Cox)가 80년대 초에 만든 언어이다. 오브젝티브 C는 완전히 객체 지향적이다. 이 언어는 상호 사용 가능한 소프트웨어 컴퍼넌트를 선보였으며, 다른 프로그램의 호출이 매우 쉬웠다.

새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대한 작업도 이뤄지고 있었다. 넥스트 머신(모니터 해상도가 1152X864였다)의 고사양 때문에, 웍스페이스라 불린 인터페이스도 훨씬 세밀해야했다. 매킨토시와는 달리 웍스페이스는 (그레이스케일 디스플레이덕분에) 3D를 갖고 있었다. 더군다나 넥스트스텝은 인터페이스 디자인에 완전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현하였다. 활성화시킨 애플리케이션 간의 쉬운 전환을 위해 애플리케이션 론쳐로서, 그리고 스위쳐로서 공히 사용 가능한 툴바가 나왔던 것이다. 문서를 데스크톱에 저장시키는 대신 사용자들은 홈 디렉토리에 문서를 저장시켰으며, 브라우저를 통해 안을 돌아다녔다. 또한 스크롤바를 창의 왼쪽에 놓았는데, 대부분의 사용자들이 오른쪽보다는 왼쪽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었다. 메뉴바의 위치 또한 사람들의 주목을 더 받는 왼쪽에 놓여졌다.


하드웨어는 당시로서도 독특했다. CPU는 모토로라 68030(애플에서는 1989년 SE/30을 선보이기 전까지 이 칩을 사용하지 않았었다) 25 MHz였으며, 8 MB의 RAM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메모리는 컴퓨터에서 제일 비싼 부품이었다. 큐브의 값을 (다른 유닉스 웍스테이션에 비해) 어느 정도 떨어뜨리기 위해 하드 드라이브나 플로피 드라이브가 없이 256MB 용량의 광자기 드라이브만이 달려 있는 버전이 나오기도 하였다.

광자기 드라이브는 CD-ROM처럼 작동하였으며, 작성중일 때는 레이저때문에 열이 났다. 레이저는 한 점 한 점 쏘여졌으며, 각 점이 1 비트를 표현하였다. 하드드라이브가 있는 버전에 비해 어느정도 광자기 드라이브 버전은 저렴했다. 광자기 드라이브가 플로피 디스크보다는 빨랐지만 제일 싸구려 하드 드라이브보다도 훨씬 느렸기 때문에, 하드 드라이브가 없는 넥스트는 상장 이후에도 전체 컴퓨터가 느리다는 이미지를 심여주고 말았다.

넥스트는 큐브 디자인에 크게 덧붙인 것이 두 가지 있었다. 디지탈 시그널 프로세서와 메인프레임이었다. 디지탈 시그널 프로세서는 그래픽 그리기와 같은 복잡한 수학 연산을 가속화시켜서, 모뎀 커뮤니케이션이나 음악 처리같은 기능을 행하였다. "메인프레임 온 어 칩"은 그당시 더 빠른 CPU와 관련된 캐치프레이즈로서, 예전의 대형 메인프레임과 엇비슷함을 나타내는 문구였다.

1987년, 넥스트는 어도비와 워드퍼펙트, 로터스를 포함하는 개발자들을 선별하여 새 운영체제를 보여주기 시작하였다. 순수한 베타 형식이었지만, 이 회사들은 프로그래밍이 너무 쉽다는 점에 매혹당하였고, 세 회사 모두 즉각적으로 새 운영체제를 위한 제품 개발에 착수하였다.

스티브 잡스는 언제나 프리젠테이션에 몰두해 있었다. 그의 눈에 있어서는 넥스트 컴퓨터의 성공을 위해 넥스트큐브의 디자인이 너무나 중요했다. 잡스는 애플 시절 같이 작업했었던 프로그 디자인을 선택하여 큐브의 디스플레이와 프린터, 본체를 디자인하였고, IBM과 엔론의 로고를 만든 폴 랜드(Paul Rand)도 고용하여 넥스트 로고를 만들게 된다.


잡스는 큐브의 대략적인 묘사(12인치 큐브와 모니터)만 설명해주고 나머지는 프로그 팀에게 맡겼다. 1987년 말, 프로그는 최종 디자인을 넥스트에 건네 주었으며, 넥스트는 본체 생산을 준비하였다. 캘리포니아 Fremont에 있는 공장은 완전히 자동화되어 있었으며 당시로서는 꽤 독특한 공장이었다. 마더보드 조립시에는 어떠한 사람의 손길도 들어가지 않았으며, 그 외에도 실제 근로자의 개입을 많이 없앴다. 불량율을 낮추기 위해서였다. 이 시설은 넥스트가 벌인 최대의 투자였으며, 당시 업계의 모범 사례가 되었다. 큐브에 있어서 하드웨어 품질 문제는 들리지가 않을 정도였다.??

1988년, 넥스트는 일반 대중을 위한 넥스트큐브와 넥스트스텝을 준비하였다. 넥스트스텝의 기술적인 우위를 보여주기 위해, 애플도 참여한 큐브 번들용 소프트웨어에는 셰익스피어 전집과 미리엄-웹스터 사전, 옥스포드 인용어구 사전과 eBook 리더도 있었다. 또한 체스와 메일, WriteNow, 애플 셰어 클라이언트 외 다른 유틸리티들도 있었다.

컴퓨터 산업에 반향을 일으키기 위해, 넥스트는 1989년 샌프란시스코의 데이비스 심포니 홀에서 큐브를 일반에 공개하였다. 그 홀은 당시 가득찼었다. 몇 번의 멀티미디어 프리젠테이션이 끝나자, 청중들은 환호하였고, 사업적인 반응도 매우 긍정적이었다. 애플은 큐브를 바이트와 유닉스월드 등의 여러 잡지사에 보냈다. 바이트와 유닉스월드는 모두 넥스트 머신과 넥스트 소프트웨어로 출판을 하고 있었다.

큐브는 베타 버전의 넥스트스텝과 함께 6500 달러에 개발자와 고등교육기관에 팔렸는데, 이 가격이 절묘했었다. 최고사양의 개인용 컴퓨터와 대부분의 웍스테이션의 사이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 전략은 먹혀 들어갔다. 당시 생산해냈던 큐브를 모두 다 팔았고, 주문도 새로 받았기 때문이다. 큐브는 넥스트의 주요 수입원으로서 WriteNow를 제쳤다.

큐브가 나온지 거의 순식간에 넥스트는 WriteNow를 프레임메이커 제작사인 T/Maker에게 라이센스하여, 소프트웨어 배포권을 독점적으로 인정해 주었다.

넥스트는 넥스트스텝의 최종화에 모든 노력을 쏟고 있었으며, 좀 더 저렴한 값의 웍스테이션 제작을 시작하였다. 이름은 넥스트스테이션이었다. 1990년, 넥스트스텝 1.0이 새 큐브와 같이 나왔으며, 기존의 모든 큐브 사용자들은 무료 업그레이드 혜택을 받았다. 새 시스템은 버그를 잡은 것 외에 없었지만, 반응은 좋았다.

넥스트스테이션은 큐브보다 훨씬(그리고 A/UX가 탑재된 맥을 포함하여 어떠한 유닉스 웍스테이션보다도 훨씬) 저렴했으며 퍼포먼스는 더 좋았다. 넥스트스테이션은 맥 IIsi보다도 저렴했었다. 큐브의 68030과는 달리 모토로라 68040 프로세서를 탑재했으며, 기본 사양으로 16 메가 바이트의 RAM을 갖고 있었다. 아마도 제일 중요한 사실은, 넥스트스테이션에 플로피 드라이브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큐브 사용자가 파일을 또다른 큐브 사용자에게로 전송시키고 싶어 한다면, 네트워크를 이용해야 했다. 리무버블 장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디스크를 빼면 본체를 꺼야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넥스트 사용자들은 네트워크가 되어 있지 않더라도 파일을 전송시킬 수 있게 되었다. 게다가 넥스트스테이션은 큐브보다 훨씬 컴팩트했었다. 쿼드라 600 시리즈와 비슷한 크기의 본체로 이뤄진 넥스트스테이션은 넥스트 메가픽셀 모니터 아래에 딱 들어맞았다.

넥스트스테이션은 특히 정부 기관과 대학에 믿을 수 없으리만치 잘 팔려나갔다. 국가안보국(NSA) 한 군데에서만 수백 대를 사들였을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넥스트는 좋아 보였다. 1993년(큐브와 스테이션에 컬러를 입힌 것 외에 여러가지 업그레이드가 있었다)이 되자, 넥스트는 PC와 Sparc에서도 돌릴 수 있는 넥스트스텝 2만 카피를 팔고 있었으며, 전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유닉스 웍스테이션 기업이었다. 그러나 공장과 하드웨어 개발에 들어가는 비용이 넥스트의 하부 구조를 무너뜨리고 있었다. 1993년, 넥스트는 모든 넥스트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90년대 초반에는 차세대 객제 자향형 운영 체제에 대한 루머가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우즈 NT의 객제지향형 버전인 카이로를 1996년에 내어 놓겠노라 약속했었고, IBM은 실질적으로 AIX나 OS/2 상에서 돌아가는 객제지향 운영 환경을 선보였었다. 이는 Coomonpoint라 불리었는데, 애플에서의 탈리젠트 프로젝트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자기 자신만의 객제 지향 운영 체제라는 수사(修辭)에 넥스트는 썬 마이크로시스템즈의 관심을 끌게 된다. 썬은 넥스트스텝을 솔라리스 운영체제 상에서 구현시키고 싶어했다. 마이크로소프트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서였다. 두 회사는 오픈스텝이라는 프레임웍을 만들기로 동의하였고, 넥스트스텝은 솔라리스 상에서 돌리기 위한 컷다운된 넥스트스텝 버전에 착수하였다. 이는 상대적으로 쉬웠다. 넥스트는 마이크로커널을 제거하여 솔라리스 서버용으로 재컴파일하였고, 약간의 조절을 거쳐 프로젝트를 대부분 끝내 놓았다. 1994년, 썬과 넥스트는 첫 번째 오픈스텝 버전을 선보였고, 1995년에 출하하기로 약속하였다. 썬은 오픈스텝을 모든 솔라리스 설치본에 번들시키기로 약속하였는데,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를 취소하게 된다.

넥스트는 여러가지 운영체제용으로 오픈스텝 버전을 마케팅하였다. 그때까지 제일 유명했던 오픈스텝은 윈도우즈용이었는데, 넥스트는 나중에 넥스트스텝 상에서 완전히 돌아가는 오픈스텝 운영체제도 출하했었다.

오픈스텝에 더해서, 넥스트는 객체 지향 프로그래밍 환경을 네트워크화시키고 있었다. 이 제품은 웹 브라우저를 돌리는 어떠한 운영체제용으로도 객체 지향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넥스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비쥬얼스튜디오를 포함하여 여러가지 운영체제용으로 이 프로그래밍 환경용 플러그인을 만들었는데, 웹오브젝트는 1996년 3월 5만 달러로 판매가 되었고, 판매 실적도 좋았다. 한 때 넥스트는 델의 온라인 스토어를 서빙하기도 하였으며, 아이튠즈 뮤직 스토어 외 여러가지 다른 곳들에서 웹 오브젝트를 사용중에 있다.

스티브 잡스의 예전 회사인 애플은 여러가지 착오 끝에 새 사업 전략을 강구하고 있었다. 애플 이사진들에게 있어서 우선은 마이크로소프트 NT로 고객을 빼앗기기 않기 위해 멀티태스킹 운영체제를 만들어내야(혹은 사들여야) 했다. 애플 경영진들은 벌써 3 년째 아무 성과가 없던 코플랜드 프로젝트를 거의 신뢰하지 않았으며, 유일한 대안은 다른 운영체제를 사들이는 것 뿐이었다. 애플의 후보중에는 주로 BeOS(애플이 솔라리스, 혹은 심지어 윈도우즈 NT를 라이센스 하리라는 루머도 돌았다)가 떠올랐었다.

결국 선택된 회사는 넥스트였다. 넥스트 엔지니어 팀은 모두 애플로 옮겨갔으며, 결국 스티브 잡스는 애플의 CEO가 되었다. 그는 클래식 운영체제를 계속 개발함으로써 애플 이사진들과의 약속을 깨고, 4 년 후에서야 넥스트 기반의 맥 오에스를 출하시킨다.

 
*Corrections courtesy of The Lightning Stalker

http://braeburn.ath.cx/modules.php?...e=article&sid=7

Full Circle: A Brief History of NeXT

Tom Hormby
2005.07.05


Good-bye, Apple

애플에서 스티브 잡스의 이력은 독특하다. 비범한 그의 리더쉽은 애플에서 70년대와 80년대에 제일 중요한 두 제품, 즉 애플 II와 매킨토시를 낳았다. 그러나 잡스에게는 불행하게도 그 자신이 고용한 CEO, 존 스컬리는 잡스가 받아들이려 하는 위험을 참지 못했다. 다소간의 권력 투쟁 끝에 스컬리는 애플을 차지하였고, 잡스는 1985년, 애플을 떠난다.

몇 달 후, 잡스는 컴퓨터 업계에 다시 돌아와야겠다고 결정내렸다. 그는 700 만 달러를 들여서 새로운 컴퓨터 회사, 넥스트를 창립한다.

당시 소프트웨어에 불만족했던 스티브는 다른 운영체제 상에서 돌아가는 새로운 프로그래밍 환경을 만들 소프트웨어 개발자 팀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 환경은 객체 지향 환경으로서, 프로그램들이 최종 사용자들에게 있어서 기능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음을 뜻했다.

잡스는 또한 이미 하이엔드 웍스테이션과 맥에서만 가능했던 기능들을 통합시키기 바란다. 여기에는 위지윅 인터페이스와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 그리고 그당시 맥은 아직 갖지 못했던 완벽한 멀티태스킹 운영체제가 포함된다.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와 컴퓨터를 출시하기 꺼려했던 넥스트는 프로그래밍 환경을 위한 호스트 운영체제를 찾는다. 넥스트는 썬오에스와 몇 가지 유닉스를 고려해 보았지만, 잡스가 쉽사리 구현시키기를 원했던 모든 기능을 가진 플랫폼은 찾을 수 없었다.

잡스는 매킨토시 개발자들에게 가서 그 아이디어를 팔았다. 애플의 저작권 정책때문에, 애플에서 개발된 미출시 프로그램들 몇 가지는 이제 넥스트에서 일하는 개발자들의 소유가 되었고, 그 결과 넥스트가 내놓은 첫 번째 상용 제품이 바로 WriteNow였다. 이 프로그램은 MacWrite와 같이 개발됐었다.

WriteNow가 어느정도 넥스트에게 수입을 안겨다주었고, 투자자들까지 이끌게 된다. 1986년, 로스 페로(Ross Perot)가 넥스트의 두 번째 주주가 된다.

NeXTstep

새 운영체제와 컴퓨터 개발에 여념이 없던 잡스는 후에 넥스트스텝이라 이름불리게 될 넥스트 운영체제를 만들기 위해 마흐 마이크로커널의 주 개발자인 애이비 티베이니언(Avie Tevanian)을 고용한다. (원래 마흐 커널은 카네기멜론에서 개발되었고, 마이크로커널 개념의 증거를 뜻했다.)

하나의 커다란 커널에 많은 기능을 입히는 것 대신, 마이크로커널 운영체제는 소프트웨어와 핵심 하드웨어 간 통신에 필요한 정도만의 코드를 가질 뿐이다. 다른 모든 것들은 서버라 불리우는 프로그램들이 맡는다. 각 서버는 마이크로커널을 통과해 다른 서버로 데이터를 보낸다.

카네기멜론은 1970년대 벨 연구소와 합작으로 UC 버클리에서 개발한 BSD를 마흐로 포팅하였고, 각 시스템 기능은 서버로서 작동하였다. 이 구조는 그 자체가 객체지향 운영체제로 되었고, 잡스는 이 개념에 열광적이었다.

Hardware

새 소프트웨어를 돌릴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 그 자체만큼 중요하다. 느린 컴퓨터는 소프트웨어의 인상마저 구기기 마련이다. 그때문에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고성능 CPU에 혈안이었다. 당시 몇 가지 RISC 디자인이 도입되었는데, 이 중에는 ARM과 MIPS, SPARC도 있었다.

더 성숙해있는, 그리고 매우 고가인 프로세서 채택을 고심한 넥스트는 모토로라의 RISC 칩, 88000 채택을 원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88000은 몇 년동안 나오지 못할 터였다. 88000의 최대 고객들이 새 칩으로 이주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애플은 오른쪽, 재규어 시스템에서 88000을 사용하려 했었다.) 대신 넥스트는 매킨토시와 초기 썬 웍스테이션에서 쓰인 680x0 프로세서를 채택하였다.

이 때, 넥스트의 노력은 애플의 관심을 끌어들였다. 너무나 많은 넥스트 개발자들이 매킨토시팀에서 나왔기 때문에, 애플은 넥스트가 애플의 지적재산권을 훔쳤다고 고소하였고, 결국은 합의를 이뤄냈다. 넥스트는 매킨토시와의 경쟁을 할 수 없게 되었고, 그 결과 넥스트는 맥이 점령하지 못하고 있던 하이엔드 시장을 목표로 하게 된다. 넥스트는 또한 애플에 있던 매킨토시 개발자들이 작성한 미출시 소프트웨어 마케팅을 계속 할 수 있도록 허가를 받았다.

Objective-C and Display PostScript

1986년과 1987년에 걸쳐 넥스트스텝이 등장하게 된다. 개발자들이 마흐와 BSD를 새 하드웨어 플랫폼에 이주시키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지만, 넥스트를 경쟁에서 차별화시켜줄 수 있을만치 완전히 새로운 서버를 만드는 일은 좀 더 어려웠다. 오브젝티브-C와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는 넥스트가 가진 두 개의 야망이었다.

객체지향 운영체제를 가지려면,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가 필요했다. C++는 당시 아직 나오지 않았었기 때문에, 넥스트는 오브젝티브-C 사용을 결정한다. Stepstone에서 브래드 콕스(Brad Cox)가 80년대 초반에 개발한 오브젝티브-C는 당시 제일 많은 존경을 받는 객체지향 프로그래밍 언어였다. Ada나 베이직과 같은 언어의 “객제지향성 버전”과는 달리, 오브젝티브-C는 과부하가 매우 적었다. 게다가 C와 비슷한 신택스때문에 개발자들도 배우기 더 쉬웠다.

출력에 있어서 포스트스크립트를 사용하고, 디스플레이에 있어서 퀵드로우를 사용하는 맥의 방법에 불만을 가졌던 잡스는 출력된 페이지 그대로 표시해주기를 바랐다. 그래픽 렌더링의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잡스는 어도비에 접촉하여 포스트스크립트를 데스크톱으로 끌어들인다. 어도비도 여기에 흥미를 가졌었다. 넥스트는 포스트스크립트를 넥스트스텝으로 포팅시키는 고된 작업을 하였고, 결국 디스플레이 포스트스크립트가 탄생한다.

The NeXTstep Interface

1987년 당시 운영체제의 주요 부분은 완성되었거나, 거의 완성된 상태였다. 사용자 인터페이스는 여전히 맹아 단계였지만, 전망은 밝았다. 매킨토시처럼 파일과 프로그램 관리를 위해 엄격한 데스크톱 메타포를 사용하는 대신, 넥스트스텝은 좀 더 유연한 인터프리테이션을 사용하였다.

넥스트스텝 인터페이스를 제일 잘 돋보이게 해주는 인터페이스는 독이다. 프로그램이나 파일 프로그램이 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넥스트스텝에는 데스크톱이 없었다. 사용자들은 독 아이콘을 통해 파일시스템에 접근하였다. 디스플레이포스트스크립트덕분에, 그래픽은 매우 섬세했으며, 덕분에 인터페이스까지 좋게 보일 정도였다.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던 동시에, 하드웨어도 완성된다. 68030 프로세서로 만들어진 넥스트 웍스테이션에서 제일 독특한 부분은 그 몸체와 광자기 디스크 드라이브였다.

당시 하드 드라이브는 매우 고가였으며, 넥스트 운영체제는 200MB 정도를 요구할 정도로 거대했다. 그 정도 용량의 하드 드라이브는 수 천 달러를 호가하였다. 그래서 하드웨어 엔지니어들은 광자기 포맷 채택을 결정내렸다. 보통의 하드 드라이브보다는 느리지만, 광자기 디스크는 플로피 디스크보다 훨씬 빨랐다. 넥스트는 광자기 디스크를 판매용 컴퓨터에 채택시킨 첫 번째 회사가 되었다.

애플 IIc와 맥 II 시리즈를 디자인한 프로그(Frog)에서 맡은 넥스트의 본체는 매우 독특했다. 표준 데스크톱 케이스 대신, 넥스트는 12“ 마그네슘 큐브를 사용하였다. 넥스트큐브라 이름붙여진 이 컴퓨터는 완전 자동화된 공장에서 나왔고, 첫 번째 큐브는 1988년 10월 뉴욕에서 첫 선을 보였다.

베타 버전의 넥스트스텝(버전 0.9)를 사용한 큐브는 1989년까지 제한적으로 대학과 출판사에 공급되었다.

대부분의 리뷰와 기사들은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에 집중하였다. 광자기 드라이브때문에 퍼포먼스는 매우 느렸는데, 리뷰어들은 이를 소프트웨어 탓으로 돌렸다. (CD로 컴퓨터를 운영한다고 생각해 보라.)

1990년 9월에는 25 MHz 68040-기반의 넥스트큐브가 나왔고, 이 기기의 대 대학, 정부 매출은 괜찮았다.

각 넥스트큐브에는 17인치 메가픽셀 흑백 디스플레이(네 단계의 음영을 나타내는 1120 X 832 픽셀)와 400 도트짜리 레이저프린터(포스트스크립트 인터프리터를 포함한 컴퓨터로서 당시 어떤 프린터보다 확실히 저렴했다), 그리고 이더넷 네트워킹을 내장하고 있었다.

넥스트는 광자기 디스크에 옥스포트 완전한 영어 사전과 이메일 클라이언트, 셰익스피어 전집과 같은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번들시켰다. 잡스는 이 새 컴퓨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넥스트큐브는 처음으로 실패하거나, 아니면 마지막으로 성공할 머신이 될 것이다.“

기업 시장에서 IBM 클론이 번창하면서 새 하드웨어 플랫폼이 들어갈 곳이 마땅치 않게 되었음을 깨달은 잡스는 대학과 연구 기관에 대해 상당한 할인 혜택을 부여하기로 한다. 학생들이 넥스트에 빠져서 앞으로도 넥스트를 사용하도록 하자는 의도에서였다. 이 전략은 어느정도 효과를 보았다. 주요 대학들은 컴퓨터학 프로그래밍을 위해 큐브를 채택하였다.

1990년과 1991년, 넥스트는 Dobbs를 비롯한 여러 컴퓨터 잡지에 기사를 띄우는 등, 운영체제 홍보에 여념이 없었다. 넥스트는 수 페이지의 C++ 코드가 딱 몇 줄의 오브젝티브-C로 바뀌는 방식을 주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넥스트는 다소 느린 하드웨어보다는 소프트웨어로 접근을 돌릴 수 있었다.

New Hardware

1991년 초반, 넥스트는 큐브의 광자기 드라이브를 포기하고 하드드라이브로 돌리는 새로운(그리고 더 날씬한) 웍스테이션인 넥스트스테이션을 발표한다.

큐브에 대한 불만이 또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두 대의 큐브간 정보 교환의 어려움이었다. 네트워크가 아니면 불가능했다. 이들 머신이 가진 드라이브는 한 대 뿐이었고, 그 디스크가 운영체제를 갖고 있어서 컴퓨터를 쓰고 있을 때에는 디스크를 뺄 수가 없었다. 따라서 넥스트스테이션은 플로피드라이브를 채택한다. 넥스트스테이션의 디자인도 프로그에서 맡았다. 그 디자인은 마치 피자박스 같았다. (센트리스610보다 약간 더 컸다.)

넥스트스테이션에는 컬러와 좀 더 많은 네트워킹 프로토콜을 지원하는 새 버전의 넥스트스텝이 번들됐다. 동시에 넥스트는 큐브 사용자들로 하여금, 하드드라이브와 컬러 디스플레이 업그레이드를 제공하였다.

NeXTstep Becomes OpenStep

새 하드웨어는 초기 큐브보다 훨씬 성공을 거두었지만, 아주 잘 팔려나가는 것은 아니었다. 1993년 넥스트는 넥스트스텝을 여러가지 다른 플랫폼에 포팅시키는 데에 큰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에는 MIPSD와 PA-RISC, SPARC, x86도 있었다. 이는 즉 넥스트 하드웨어 라인의 종말을 뜻했다.

이 선언은 썬의 관심을 끌었다. 썬은 당시 객체지향 환경에 있어서 마이크로소프트를 누를 무기를 찾고 있었다. 당시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 운영체제를 홍보하고 있었다. 카이로는 결국 시장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1996년에 나온다고 되어 있었다.

썬과 넥스트는 전체 운영체제가 아닌, 넥스트스텝 환경을 썬 솔라리스에 탑재시키기로 동의하였다.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었다. 넥스트가 할 일이라고는 마흐를 제거하고, 솔라리스와 잘 돌아가도록 몇 가지 로우레벨 서버를 재작성한 것 뿐이었다. 이 새 제품은 오픈스텝이라 불리었다.

카이로가 오로지 허풍일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썬은 솔라리스용 오픈스텝에 대한 관심을 잃고, 대신 자바 출시 준비에 전력을 기울인다. 반면 윈도우즈용 오픈스텝은 매우 인기가 좋았다. 여러 금융 기관에서 오픈스텝을 채택하였다. 넥스트는 인터넷용 데이터베이스 시스템인 웹오브젝트도 출시하였는데, 이 제품은 Dell을 포함한 여러 기업에서 채택되었다.

Hello, Apple

몇 가지 성공 제품들이 있긴 했지만, 넥스트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로스 페로는 자신의 지분을 매각하였고, 잡스는 넥스트에서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넥스트가 재빨리 돈을 잃고 조용히 문을 닫으리라 믿은 기자들이 많았다.

그때 애플은 연일 최대 손실을 갱신하고 있었다. 애플 경영진은 애플 플랫폼을 되살리는 최고의 방법이, 앞으로 나올 소비자용 윈도우즈 NT와 맞서기 위해 완전히 새로운 운영체제를 출시하는 것이라고 결정내린다.

대부분의 분석가들은 애플이 가세의 비(Be)로부터 비오에스를 라이센스하거나 비를 인수하고는 재빠르게 애플 버전을 출시하리라 예상했었다. (당시 비오에스는 이미 파워맥용으로 나와 있었고, 맥과 비슷한 인터페이스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비는 돈을 너무나 많이 요구한 모양이었다. 애플은 다른 곳을 택한다.

솔라리스와 윈도우즈 NT 등, 여러가지 대안을 고려한 끝에 애플은 넥스트 인수와, 오픈스텝상에서 차세대 맥 오에스를 만들기로 결정내린다. 애플은 1997년 12월 넥스트를 인수하였고, 스티브 잡스는 애플로 복귀한다.

http://lowendmac.com/orchard/05/0705.html

위민복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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