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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NeXTSTEP

80년대 OS의 역사

by soosun 2009. 7. 17.
80년대 OS의 역사

 


SCO, Linux, and Microsoft in the History of OS: 1980s

Tuesday, August 14, 2007

Xerox PARC and Apple New Macintosh: 1980 - 1984.
Digital Research CP/M이라는 70년대 기술을 80년대에 MS-DOS로 베껴낸 마이크로소프트와는 달리, 애플은 70년대에 하드웨어로 거둔 이윤을 가지고, 80년대에서도 새 하드웨어를 판매하기 위해 훨씬 더 강력한 소프트웨어 개발비에 투입한다.

원래는 제록스 PARC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인 그래픽 인터페이스를 기반으로 애플이 만든 새로운 세대의 컴퓨터로서 리사와 매킨토시가 있다. 애플은 주식 계약을 통해, 기술값을 제록스에게 지불하였지만, 애플 제품이 제록스 코드에 기반하지는 않았으며, 애플 자신이 제록스 코드에 접근할 권리도 없었다.

애플이 디자인한 소프트웨어는 제록스 연구자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진전되어 있었다. 가령, 제록스는 마우스와 비트-맵 디스플레이, 윈도 영역에 대한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하였지만, 애플은 독자적으로 이 아이디어를 움직일 수 있는 윈도, 겹칠 수 있는 윈도로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배경을 자동적으로 다시 그려냈다. 윈도가 창에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었다.

애플은 또한 완전히 다른 시스템 아키텍쳐를 개발해냈다. 당시 제록스가 제시한 엔트리 패키지는 10만 달러였고, 파일과 프린트 서버가 있는 경우 16만 달러였다. 그러나 애플이 만들어낸 맥 시스템은 2500달러에 불과했다.


[On Xerox, Apple and Progress - Folklore.org]

Microsoft Copies Apple's Mac: 1982 - 1987.
애플 매킨토시가 첫 선을 보이기 이전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매킨토시용 첫 애플리케이션 개발에 참여했었다. 즉, 맥 그래픽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프로토타입 때부터 마이크로소프트는 내부 접근이 가능했다. 실제로 돈을 벌리는 곳이 소프트웨어이지 컴퓨터 판매가 아니었던 마이크로소프트는 맥의 그래픽 운영체제가 다른 하드웨어에서도 돌아가기를 원하였다. 그러나 애플은 자사 시스템을 다른 회사 시스템에 라이센스할 계획이 없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와 CP/M 간의 경쟁을 끝내버릴 최고의 방법은 애플 맥처럼 돌아가는 그래픽 프론트엔드이리라 결정내린다. 하지만 그것은 보통의 PC에서도 돌아가야 했으며, MS-DOS도 돌아가야 했다. 그래야 DOS 시장이 고착화되고, 경쟁사가 넘어들어오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었다. 즉, PC 시장의 독점을 지속화시킬 수 있었다.

맥 시스템 소프트웨어와 툴박스의 내부적인 지식을 습득한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맥 애플리케이션을 포팅한 프로그램을 PC 사용자들이 돌릴 수 있도록 해 놓은 모방용 환경이었다. 그러나 80년대 PC 사용자들은 윈도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1990년, 윈도 3.0이 나올 때까지 컴퓨터에 미리 윈도를 설치한 PC 업체도 없었다.


[A Rich Neighbor Named Xerox - Folklore.org]

Graphical Desktops From Commodore and Atari: 1985 - 1990.
하지만 미래의 운을, 제록스가 개척하고 애플이 주류로 가져다온 그래픽 운영체제에 건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만도 아니었다.

제이 마이너(Jay Miner)가 이끄는 16비트 비디오 게임 시스템 개발부가 아타리에 있었다. 마이너는 아타리를 나와 80년대 초, 아미가를 창립한다. 원래는 아타리와 계약을 맺어서 특화된 비디오 게임용 칩셋을 판매하기로 되어 있었던 아미가를 인수한 곳은 Commodore였다. 코모도어는 아미가 기술을 이용하여 진보적인 오디오, 비디오 기능을 갖춘 새 데스크톱 컴퓨터를 개발한다.

코모도어는 C-64로 8-비트 계의 강자였으나 점차 나이를 먹어가고 있었으며, 아미가 덕분에 코모도어는 애플 매킨토시와 같은 저가격 그래픽 운영체제 시장에 뛰어들게 된다.

아미가를 인수하기 전에 코모도어 사장이었던 잭 트라밀(Jack Tramiel)은 애플 맥이 8-비트 시장을 부숴버리리라 우려하며 코모도어를 떠났었다. 그가 생각한 16-비트 그래픽 시스템은 아타리 인수와 관련하여 갈등을 빚었다. 그는 8-비트 시장을 완전히 떠나서, 강력하고 새로운 그래픽 데스크톱 시장의 저가 주도자가 되기를 원했었다.

트라밀은 1984년부터 1987년까지 아미가 기술을 갖고 코모도어와 아미가 간에 법정 소송을 걸었다. 두 회사 모두 법정 소송에 지쳐버릴 지경이었다. 그 동안 아타리는 Atari ST라는 고유 시스템ㅁ을 개발한다. 부분적으로는 Digital Research의 그래픽 운영체제인 GEM과 함께 CP/M 코드 일부를 사용하고, 기본적으로는 제록스 PARC의 리 제이 로렌즌(Lee Jay Lorenzen)의 작업에 기반을 두었다.

코모도어와 아미가가 저가공세를 펼치자, 애플은 16-비트 애플 IIGS를 1986년에 내놓는다. 맥 소프트웨어 기술을 애플 IIe와 호환시켜서 내놓은 소비자용 기기였다. 애플 IIGS덕분에 애플은 교육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으며, 맥 라인을 계속 프리미엄 가격으로 유지시킬 수 있었다. 맥 라인은 애플에게 거대한 이윤 마진을 안겨다 주었다.


[1985-1990: 16-비트 그래픽 컴퓨터의 시대]

Steve Jobs’ NeXT Computer: 1986 - 1990.
맥의 고마진 덕택에 애플은 차세대 소프트웨어 개발에 돈을 투자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애플 창립자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가 맥의 다음에 대해서 잘못된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애플을 1986년 떠난다.

잡스는 넥스트를 창립한다. 다른 업체의 하드웨어에서도 돌아갈 진보적인 소프트웨어 플랫폼의 개발이 원래 목적이었다. 하지만 넥스트 기술을 떠받쳐줄 하드웨어가 없음이 드러나자, 넥스트는 스스로 하드웨어 플랫폼 제작에 나선다.

새로운 넥스트 컴퓨터는 애플 맥 II 라인과 수많은 유사성을 지니지만, 특수한 DSP 칩을 내장하고, 실험적인 광자기 디스크 기술로 플로피를 대체하는 등, 여러 면에서 기존 컴퓨터와 달랐다. 또한 진보적인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은 최고의 운영체제기술과 애플리케이션 개발기술을 조합시킨 시스템이었다.


[1990-1995: NeXT와 Be, 그리고 Mac PC]

Windows In Search of an Operating System: 1987 - 1990.
애플과 아타리, 코모도어, 넥스트가 진보적인 그래픽 시스템을 쏟아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CP/M을 베낀 DOS만으로는 가망이 없음을 깨닫는다.

이와 동시에 Digital Research 자신을 포함하여, 대안형 DOS 어버체들로부터의 경쟁도 있었다. 기존 PC 시장에 있어서 CP/M-86은 직접적인 경쟁상대였으며, GEM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 계획과 대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시장을 완전히 떠나버리기로 계획한다. 이에, 마이크로소프트는 1987년, IBM과 협정을 맺어서 대체할 운영체제, OS/2 개발 작업에 착수한다. DOS 경쟁을 없애버림으로써, 마이크로소프트는 MS-DOS 사용자들을 IBM의 OS/2로 이주시킬 요량이었다. 또한 맥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OS/2 최상단의 그래픽 셸(윈도)용으로 포팅시키는 작업도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전까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운영체제 개발 경험은 없었다. 따라서 OS/2로써 IBM을 끌어들인 것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 있어서 참 행운이었다. 유닉스 재판매에 대한 흥미를 잃은 마이크로소프트는 제닉스를 1987년, Santa Cruz Operation에 인수시킨다.


IBM's Personal System/2: 1987 - 1990
IBM은 OS/2 상단에서 돌아가는 맥 애플리케이션 환경 제작을 마이크로소프트가 도와주기 희망하였다. 애플처럼 IBM도 하드웨어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PC-DOS를 내장시키기로 마이크로소프트와 협정을 맺었기 때문에 IBM은 PC 시장의 통제력을 상실해버렸다. 여러 업체들이 IBM PC 디자인을 베꼈기 때문이다.

IBM은 OS/2로 PS/2라 불리우는 새로운 컴퓨터가 시장을 통제하기 원하였다. 그리고 이 하드웨어 디자인을 다른 업체들에게 라이센스하여 이윤을 받기 바랬다. 하지만 IBM 계획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PC 업체들은 단순히 더 저렴한 PC 클론 디자인을 개발해서 기존 MS-DOS 라이센스만 계속하였다.

IBM PS/2 하드웨어와 OS/2 소프트웨어의 몰락은 마이크로소프트에게도 좋지만은 않았다. 이미 MS-DOS 4.0이 DOS의 마지막이며, 앞으로는 OS/2가 공식적인 후계자이노라 발표해 놓았기 때문이다.

[1990-1995: 새 플랫폼을 향한 질주]

Microsoft Scrambles Back to DOS: 1990.
DOS를 떠나려하지 않는 상황이, Digital Research에게는 좋았다. 당장 CP/M을 업그레이드하여 DR-DOS를 1988년에 만들고 계속 업그레이드를 시킨다. 새로이 1990년 5.0으로 나온 DR-DOS는 MS-DOS의 최종버전을 상당히 앞서나갔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새로이 MS-DOS 5.0을 선보일 것이며, InfoWorldPC Week 등 여러 잡지에 직접 발표를 하였다. 그러면서 MS-DOS 5.0이 이미 존재하는 양, 신기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였다.

실제 제품은 1년 뒤에나 나왔으나, 이러한 선제 발표는 DR-DOS를 죽여버리는 결과를 빚어낸다. 이 전략이 워낙 잘 통했기에, 마이크로소프트는 다시금 1991년, 아직 나오지도 않은 MS-DOS 6.0을 갖고 DR-DOS 6을 물리칠 수 있었다.

Microsoft Leverages its Monopoly and Benefits from Litigation: 1985 - 1990.
마이크로소프트는 맥과 아미가, ST와 Digital Research의 GEM 환경으로 대표되는 그래픽 컴퓨터에 5년 뒤쳐져 있었다. 80년대 내내,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제품은 하나의 농담거리였으며, IBM과 OS/2를 통해 DOS를 보다 개선시키겠다는 계획도 실패하고만다. 마이크로소프트로서는 계속 허풍만 떨 수 밖에 없었다. 부분적으로는 허풍성 소프트웨어를 언론에 퍼뜨리자는 목적도 있었지만, 소송을 통해 경쟁을 없애려는 의도도 있었다.

  • 애플의 Digital Research 고소 (1985년): GEM 제품때문이었다. GEM을 PC 시장에 묶어버리는 승리를 가져온다.

  • 애플의 마이크로소프트 고소 (1988년): 윈도 2.0 때문이었다. 하지만 초기에 존 스컬리가 맥 인터페이스 아이디어의, 윈도 1.0에 대한 라이센스를 동의한 바가 있었다. 맥 애플리케이션 개발을 위해서였다. 이 때문에 법원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손을 들어준다. 이로써 마이크로소프트는 애플에게 라이센스 비용을 내지 않고 계속 윈도 개발을 할 수 있게 된다.

    애플의 이러한 고소 행각때문에, PC 그래픽 운영체제 시장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밖에 남지 않게 된다. 스컬리의 무능한 경영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윈도가 워낙에 조잡한 복제본이라서, 보다 훌륭한 복제본에 소송을 일으켜서이기도 했다.

  • 애플의 NeXT 고소 위협: 잡스는 유능한 애플 인재들을 다수 데리고 떠났다. 이들은 애플 내에서 차세대 기술을 연구하던 인재들이었다. 이 때문에 넥스트는 소비자 시장에 제품을 내놓지 못하게 된다. 넥스트가 개발한 신기술이 애플 제품에게 가격이나 혁신 압력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 아타리와 코모도어 간의 소송: 80년대 후반 개발한 아미가 기술을 둘러싼 소송이었고, 두 회사 모두의 소모전이었다.

[특허와 애플]

GEM을 둘러싼 애플과의 소송으로 이미 타격을 입은 Digital Research는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와 MS-DOS 간의 인위적인 결합에 결정타를 맞는다. 윈도 95는 그 경향을 더욱 거대하게 만들어버렸다. 윈도와 DOS는 단일 제품화 된 것이다.

그 동안 마이크로소프트의 PC 업체들 간의 라이센스 협정도 DR-DOS와 IBM의 OS/2를 몰아내는 내용을 갖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 애플리케이션을 갖고 윈도와 PC를 맥의 대안으로 내세웠다. 맥용 오피스 출시를 늦추면서 말이다. 원래 이크로소프트를 기업용 애플리케이션 시장에 소개시켜준 플랫폼은 맥이었다.

Microsoft Bluffs a Losing Hand: 1990.
온갖 기술 기업들이 싸워대는 통에, 신기술을 내세울 역량을 전혀 증명하지 못한, 경쟁력 부족한 DOS 기업만이 자신의 마케팅 기술을 갖고 전면에 나서기 시작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1990년, 윈도 3.0을 선보이자,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PC 업체들에게 윈도 레이어 라이센스를 통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러면 IBM과의 관계도 끊어버릴 수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또한 윈도를 DR-DOS와 그 외 DOS 경쟁자를 부수는 무기로서도 활용하였다. DR-DOS와 완전히 호환 가능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는 윈도 3.1에서 사용자에게 경고를 내렸다. MS-DOS를 사용하지 않으면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경고문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 DOS는 IBM의 OS/2에도 기술적으로 못미쳤다. 애플이 매킨토시로 이룩한 그래픽 시스템 시장과 대부분의 웍스테이션이 채택한 상용 유닉스 시장, Digital Research의 DOS 시장 역시 마찬가지였다. 넥스트보다는 거의 10년은 뒤떨어진 마이크로소프트였다. 그러한 기술적인 격차를, 훌륭한 마케팅으로 극복해낸 곳이 또한 마이크로소프트였다.

[1990-1995: 떠오르는 태양, 윈도우즈]

Microsoft’s Cairo Vaporware: 1991.
관심을 돌리기 위해, 1991년, 마이크로소프트는 "카이로" 계획을 발표한다. 놀라운 신기술에 매혹당한 언론은 카이로를 칭송하였고, 이미 존재하는 제품들에게는 의혹 섞인 불확신감을 표출하였다.

  • 애플은 매킨토시용으로 시스템 7의 개선만을 하고 있었다.
  • 아미가와 ST는 비디오 제작과 음악, 건축, 데스크톱 출판이라는 틈새시장을 개발하였다.
  • IBM은 'DOS보다 나은 DOS, 윈도보다 나은 윈도'라는 명목으로 OS/2 개발을 계속하였다.
  • 넥스트는 DOS와 윈도 사용자보다는 더 많이 아는 고급 고객만을 대상으로 삼았다.
  • Digital Research는 DR-DOS와 임베디드 버전의 개발을 계속하였다.

[1990-1995, 카이로로 가는 머나먼 길]

카이로 운영체제를 발표한 후, 마이크로소프트는 DOS PC 시장을 독점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기존 윈도를 계속 유지시킨다. 그동안 애플과 IBM, 리눅스, 그리고 노벨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독점적인 지위와 경쟁하기 위해 새로운 노력을 시작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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